강만수 "자제"→최경환 "필요"→추경호 "자제"…부총리 '임금 발언' 7년 주기설? [오형주의 정읽남]

입력 2022-06-29 09:10   수정 2022-06-29 09:22

<svg version="1.1" xmlns="http://www.w3.org/2000/svg" xmlns:xlink="http://www.w3.org/1999/xlink" x="0" y="0" viewBox="0 0 27.4 20" class="svg-quote" xml:space="preserve" style="fill:#666; display:block; width:28px; height:20px; margin-bottom:10px"><path class="st0" d="M0,12.9C0,0.2,12.4,0,12.4,0C6.7,3.2,7.8,6.2,7.5,8.5c2.8,0.4,5,2.9,5,5.9c0,3.6-2.9,5.7-5.9,5.7 C3.2,20,0,17.4,0,12.9z M14.8,12.9C14.8,0.2,27.2,0,27.2,0c-5.7,3.2-4.6,6.2-4.8,8.5c2.8,0.4,5,2.9,5,5.9c0,3.6-2.9,5.7-5.9,5.7 C18,20,14.8,17.4,14.8,12.9z"></path></svg>“경제의 어려움을 감안해 경영계에서 과도한 임금 인상을 자제해달라.”(추경호, 2022년 6월 28일)

“적정 수준의 임금을 인상해 소비가 회복될 수 있도록 힘을 모아달라.”(최경환, 2015년 3월 13일)

“생생협력의 임금교섭 분위기를 조성해 임금인상 자제를 유도할 것.”(강만수, 2008년 7월 17일)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28일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를 찾아 “대기업의 생산성을 초과하는 지나친 임금 인상은 노동시장의 양극화를 확대하고 기업 현장 곳곳에서 일자리 미스매치(불일치)를 심화시킬 것”이라며 대기업의 임금인상 자제를 요청했다.

추 부총리 발언이 나오자 직장인들 사이에서는 “가뜩이나 물가가 올라 살림살이가 팍팍해졌는데 월급도 못 올리게 하는 것이 말이 되느냐”는 등 볼멘소리가 쏟아졌다. 민간의 자발적인 임금교섭 결과에 따른 인상률에 대해 정부가 개입하는 것 자체가 부적절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정부가 민간의 임금교섭 상황에 대해 의견을 내놓은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역대 경제사령탑들은 고비 때마다 기업의 임금인상을 촉구하거나 자제를 요청하는 공개 발언을 수차례 해왔다.
강만수 "임금인상이 물가상승 악순환 초래"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08년 7월 17일 기획재정부는 강만수 장관 주재로 위기관리대책회의를 열어 고용상황과 임금체결 동향을 점검했다.


당시는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 경기가 크게 둔화됐는데 고유가로 물가상승 압력은 높아진 상황이었다. 2008년 상반기 기준 협약임금 인상률은 5.1%로 전년 동기(4.8%) 대비 0.3%포인트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기재부는 “물가상승 추세가 지속될 경우 하반기에는 임금인상 요구가 커지면서 임금인상률도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며 “임금인상이 물가상승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반복이 우려된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사업장별 임금교섭 동향 모니터링’ ‘상생협력의 임금교섭 분위기 조성’ 등 정책 추진 계획도 내놓았다.

당시 이명박 대통령도 기재부에 힘을 실어줬다. 이 대통령은 같은 해 9월 18일 제2차 민관합동회의에서 공무원 보수 동결을 언급하면서 “기업들도 임금인상을 자제해서 고통분담의 자세를 가져달라”고 당부했다.
'디플레 우려'에 최경환 "소비 위해 임금인상"
그로부터 7년 뒤인 2015년 박근혜 정부에서는 전혀 다른 상황이 펼쳐졌다. 당시는 물가가 지속적으로 하락해 경기에 악영향을 미치는 디플레이션 우려가 대두된 시점이었다.

그러자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총대를 멨다. 최 부총리는 그해 3월 4일 한 강연에서 “적정 수준의 임금 인상이 일어나지 않고는 내수가 살아날 수 없다”며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도 비슷한 주장을 하고 있고, 일본의 아베 총리는 아예 노골적으로 기업들에게 임금 인상을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같은 달 13일 경제5단체장 간담회에서 최 부총리는 “가급적 적정 수준의 임금을 인상해 소비가 회복될 수 있도록 힘을 모아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기업들을 향해 공개적으로 임금인상에 나서달라고 요구한 것이다.

최 부총리는 “대기업들은 당장 임금 인상이 어렵다면 협력업체에 대한 적정한 대가 지급 등을 통해 자금이 중소 협력업체에 흘러들어 갈 수 있도록 협조해달라”고도 했다. 당시는 삼성전자 등 주요 대기업들이 임금을 동결하는 등 임금인상에 소극적인 상황이었다.

정치권에선 의견이 엇갈렸다. 당시 강기정 새정치민주연합 정책위원회 의장은 “최 부총리가 강조한 최저임금 인상과 적정 수준의 임금인상은 매우 절실하다”고 환영 논평을 냈다.

유승민 당시 새누리당 원내대표도 “우리 사회의 양극화를 해소하고 저임금 근로자 비중을 줄이는 수단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일단 경제부총리의 발언을 환영한다”고 밝혔다.

반면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대한상공회의소와 간담회에서 “기업의 힘든 사정은 생각하지 않고 임금 인상을 압박하는 것에 속이 많이 상하리라 생각한다”며 최 부총리 주장을 정면으로 비판했다.
민주당도 3년 전엔 임금인상 자제 호소
이번 추경호 부총리 ‘임금인상 자제’ 발언을 놓고도 정치권에서 공방이 이어졌다. 더불어민주당은 “경제위기에 따른 고통분담을 노동자에만 돌리는 처사”라며 맹비난했다.

김태년 민주당 경제위기대응특별위원장은 “마치 물가 상승의 원인을 고임금으로 전가하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든다”고 비판했다. 이용우 의원도 “오히려 소득주도성장 같은 수단을 지금 써야 할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민주당도 불과 3년 전 집권여당 시절엔 기업들을 향해 임금인상 자제를 요청했었다. 홍영표 당시 민주당 원내대표는 2019년 3월 11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고임금을 받는 대기업·공공부문 정규직 노조가 3년 내지 5년 간 임금인상을 자제하는 결단을 내려줘야 한다”고 촉구했다.


당시 홍 원내대표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임금 격차 등 ‘노동시장 양극화’ 해소를 위해선 대기업 노조의 ‘통 큰 양보’가 필요하다고 봤다.

그는 SK하이닉스가 협력사와 임금을 공유하는 상생협력 모델을 언급하면서 “대기업 직원들이 임금인상분의 일정액을 내면, 회사가 같은 금액을 추가하여 협력사와 하청업체를 지원하는 방식을 대기업과 공공부문으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실질임금 하락했는데 인위적 통제는 지나쳐"
흥미롭게도 역대 경제사령탑의 임금인상 관련 발언은 매번 7년이라는 시차(강만수 2008년→최경환 2015년→추경호 2022년)을 두고 나왔다.

전문가들은 정부 관계자의 이런 발언을 두고 “실제 임금협상에 영향을 미치겠다기 보단 물가를 상승시키는 주된 요인인 경제주체들의 ‘기대 인플레이션’을 낮추겠다는 정부의 강력한 의지를 표명한 것”이란 분석을 내놓았다.

실제 추 부총리는 “물가상승 분위기에 편승한 경쟁적인 가격·임금 연쇄 인상이 ‘물가-임금 연쇄 상승 악순환’을 초래해 경제·사회 전체의 어려움으로 귀결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기업들에는 “생산성 향상과 원가 절감 노력 등을 통해 가격 상승 요인을 최대한 흡수해달라”고 주문했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2008년은 지금처럼 물가가 많이 올라 안정화시키는 것이 우선순위가 됐을 때”라며 “반면 2015년의 경우 물가 하락에 디플레이션을 걱정했던 시점”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하 교수는 추 부총리의 임금인상 자제 요청에 대해 “물가가 오르면 실질임금이 하락하는데 노동자들로서는 자신의 생산성이 떨어지지 않았다면 그만큼의 임금 인상을 요구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라며 “이런 경제논리에 따라 임금인상이 이뤄지는 것인데 정부가 인위적으로 통제하려고 드는 것은 지나친 측면이 있다”고 했다.

오형주 기자 oh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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